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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9년 2월 뉴스레터] 한국스포츠교육학회의 큰 별 손천택 교수님과의 인터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2.1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521
내용

한국스포츠교육학회의 큰 별 손천택 교수님과의 인터뷰




  

 

1. 교수님은 한국스포츠교육학회 창립 멤버이신데 학회의 설립 이유, 배경 등을 말씀해 주신다면?

 


 


: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교육학이라는 단어는 88서울올림픽 직전에 개최되는 International Sport Science Congress에서 스포츠교육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명칭을 처음 썼어요. 그 전에는 그 명칭 자체가 없었어요. 그 때 강신복 선생님께서 스포츠교육학 탄생의 기본 토대 구축을 위해 참으로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그 분이 스포츠교육학을 학문 분야로 정한 후에 제자들과 또 나 같은 사람, 90년대 초반에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귀국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1세대가 되었어요. 그 1세대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이렇게 교류할 수 있는 학문공동체가 필요했겠죠. 그러다보니까 학회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죠. 우리가 빨리 학문 공동체를 구성해서 전문지식을 쌓아가야 우리 분야를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학회 창립을 계획했죠. 처음에는 스터디그룹 형태로 모였어요. 그 당시는 학회를 창립할 때 그 분야에 대하여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외부인을 초빙하자는 얘기도 있었어요. 그 때 나를 포함해서 그 당시에 학문초기 세대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 더 참신한 학회로 발전시키자’ 그래서 ‘순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모시자’ 그러면서 다른 외부 세력이 없는, 순수 교육학을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회를 창립하게 되었어요.

 


 


 


2. 그동안 한국스포츠교육학회 활동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기억에 남는 것은 수없이 많은데,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고, 내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학회는 누구나 편하게 참가해서 즐겁게 학문적으로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후학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타 대학과 인천대학교 박사과정생들이 처음에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교감하고 그 위에 질적 연구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함께 학술 세미나를 하면서 학문적 공감대를 이뤄나갔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학회 고정 출석멤버로 자리매김해서 학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해왔던 것이 상당히 보람이 있었죠.


그 다음에 또 하나 보람 있었던 것은 스포츠 교육학회가 학문 자체로도 발전하면서,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학회가 되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현장과의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소통 문제를 고민하던 차에, 주로 현직 교사로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을 중심으로 우리체육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했어요. 이를 통하여 현장과의 연계를 실현한 것과 또 체육교사 한마당을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현장 체육교사들의 우수 수업사례를 학회를 중심으로 공유하고, 또 지방을 순회하면서 체육교사 한마당을 개최함으로서 현장 개선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상당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나 지금이나 현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자칫하면 죽은 학문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조건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액티브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안타까워요.


한편 회장을 맡고 보니까 학회 회원관리도 잘 안되고 예산도 뭐 무계획하게 쓰고 그랬는데, 학회의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법인 등록도 해서 학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역할을 했어요. 특히 그것은 내가 했다기보다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많이 희생을 하면서 3년 동안 그것을 구축하였어요. 이런 것들이 상당히 보람 있었던 것 같아요.

 


 


 


3. 그동안 대학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 사무차장, 국기원 연구소장 역임 등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위해 굵직한 삶을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하나의 사회봉사로서 사회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생각해요. 특히 특수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을 한 8년 했는데, 내 조카 맏이가 뇌성마비를 겪고 있어요. 그래서 한 때 미국에 가서 장애인체육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사회의 약자 편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오랜 기간 약자였는데, 한국 사회에서 내가 이력이 좀 특별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좋은 입장이었다기보다는 불리한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책임 있는 자리에 가면 약자, 부유한 사람 입장에서 배려하고 살아야 겠다.’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그러다보니까 개인 시간을 많이 절약하면서 장애 중에서 제일 소외된 지적장애자들을 위한 사무총장을 한 8년을 했어요.


또, 대학태권도연맹 전무이사를 한 일 년 했어요. 어떤 자리를 보고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내가 대학 선생으로서의 내 학문분야에서의 역할도 있지만, 대학 교수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측면에서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안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개인 시간을 그쪽으로 투자한 거죠.


그리고 아시안게임도 사회봉사의 차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치제안서를 못 써서 제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박사과정 학생들 데리고 제안서를 썼어요. 유치제안서가 영문으로 한 4~5백 페이지 되는데 체육을 전공한 사람이 한 번도 유치제안서를 쓴 적이 없어요. 체육인이 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그렇게 어려운 과제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유치제안서를 박사과정 학생들과 함께 쓰고 유치에 참여하고, 그렇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나중에 인천아시안게임 경기 사무차장이 되었고, 또 대회를 치르고 훈장도 받게 된 거죠.


우리 체육인이 다른 분야에 가서 사회봉사를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유관 분야에 가서 자신의 전문지식을 활용해서 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측면에서 아시안게임 유치 같은 것은 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인천의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맡아서 한 거죠.

 


 


4. 최근 인천대학교를 비롯하여 학회에도 큰 액수의 장학금을 기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인천대학교에서 사범대를 개설하면서 고마웠던 것은 교사교육자인 내가 유일하게 체육교육과를 개설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학과가 잘 운영되고 학교 내에서도 47개 학과 중에서도 1등을 하고, 임용교사도 최근에 40~50% 합격률을 보일 정도로 잘 되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그렇게 했어요. 또 내가 사범대학을 개설해놓고 아시안게임이라는 국가 대사 때문에 2년 동안 파견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그리고 학과가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죠. 내가 스포츠교육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고 스포츠교육학을 통해서 성장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학회를 위해서 장학금을 기탁했기 보다는, 학회가 있었기에 학문공동체 내에서 학자로서 보람 있는 삶도 살았고, 스포츠교육학이 있었음에 스포츠교육학자로 학회나 체육 관련 단체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내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식당 웨이터도 했던 힘든 기억을 되살려보니까 큰 금액은 아니지만 어려운 후학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학금을 기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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