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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뉴스레터] 꿈을 향한 두드림(Do-Dream), 송명환 고문님을 만나다
글쓴이: 황영호
조회: 247
등록시간: 2017-07-26 12:04:50

꿈을 향한 두드(Do-Dream), 송명환 고문님을 만나다 

 


 

한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편을 두루 잡고 학회를 이끌었지만 크게 기뻐하는 법이 없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꿈을 쫓는 후배들을 만나서일까?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무렵, 송명환 고문님을 만났다. 그의 꿈을 향한 두드림은 현재 진행형이다.

 


첫 번째 두드림 교육과 연구의 시작

 

고문님은 교사로 오랜 시간 근무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대를 졸업하고 대구 서부초등학교에서 3년 간 초등교사로 일했어내가 고등학교 때 체조 선수를 했던 경험이 있는데이를 토대로 초등학교 체조부를 만들어서 상도 받았어그때 지도교수가 나에게 중등체육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중등학교 체육교사가 되면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었지.

 

그렇게 공부하고 합격했고교사자격증을 받았어그리고 상주 농잠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어나는 항상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첫 상경에 어려움과 외로움이 많았지어쨌든 1959년에 나는 앞으로 서울에 살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1969그러니까 딱 10년 만에 이루어진 거야. 


 

▲ 이 날의 만남은 맛있는 식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 당시 현장 교사 중에 박사학위 소지자가 드물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어떻게 연구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나요?

존경하는 대구교대 교수님이 나에게 공부를 계속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조언을 해주셨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으니 공부를 더 하기로 했지. 5번의 실패 끝에 국문학과에 입학했어그런데 전농중학교 동기교사가 체육을 전공하고 왜 국문학과를 갔냐.”며 한 마디 하더라고...

 

그 덕분에 1980년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 석사과정 1기로 입학했어석사학위를 받고 보니 박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석사학위 논문을 한국체육학회에 등재했는데 심사위원이 강신복 교수님이었어그 때 강신복 교수님이 논문지도를 해주시고 논문 수정 방법도 알려주셨어강신복 교수님과는 논문 작업이 끝난 후에도 중등 교과서 집필로 인연을 맺게 됐지마침내 나는 마흔 두 살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스포츠교육학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어.

 

고문님이 박사과정을 이수하실 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LT-PE로 박사학위를 했어아시다시피 ALT-PE가 학습시간분석인데나는 교사로서 늘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니까이게 참 재미있는 테마라고 생각했지그 당시는 분석 기법이 별로 없었으니까 관찰 비디오 녹화를 위해 현장으로 뛰어 들었는데관찰을 하면서 느낀 점은 체육교사로서 부끄러운 수업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야.

 

그래서 수업다운 수업만 모아서 120시간을 관찰했어교내뿐만 아니라 20개 학교를 돌아다녔지수업이 빌 때마다 내가 이런 논문을 쓰는데 관찰이 필요하다.’는 전단지를 많은 학교에 뿌렸어. 지금 같으면 하라 해도 못할 거 같아. 현장 교사가 학문의 길로 들어선다는 게 지금 돌아보니까 얼마나 어렵고 무모했었는지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

 

내가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건 스승을 참 잘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인생의 길잡이였던 대구교대 교수님과 학문적 스승인 강신복 교수님 덕분이지날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주셨는지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게 고마워

 


▲ 지나 온 삶에 대해 회고하시는 송명환 고문님. 

 

두 번째 두드림 학회장이 되다

 

고문님은 한국스포츠교육학회 5대 학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유일하게 현장 교사 출신이자 교장선생님의 발자취를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회 발전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사람 보다는 대학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내가 학회장이라는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는 기대도 안했지그런데 학회에서 나에게 회장을 부탁했고 나는 처음부터 회장감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고사를 했지그럼에도 불구하고 학회에서 부탁을 해서 내가 정말 학회 회원들의 뜻이라면 학회장을 하겠다.’고 승낙했어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걱정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을 받아 5대 학회장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어.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내가 5대 학회장을 하는 시기가 학회가 10주년 되는 시기와 맞물렸어우리가 대외적으로 모습이 탄탄하기 위해서는 기념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총무이사였던 문호준 교수의 서원대학교에서 선배 회장들을 모시고 10주년 기념행사를 했어이 일이 기억에 참 많이 남아.

 

북경체육교육학회와 자매결연을 한 일도 기억에 남아중국하고 우리학회하고 5박 6일 동안 공동세미나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지또 중국의 초··고등학교를 시찰하기도 했어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엄청 반겨주고 환대해줬지중국과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어서 학회장으로서 참으로 행복했어. 

 


세 번째 두드림 미래

 

퇴임하고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내가 다니는 종교 단체에 어린이집이 들어오게 됐어종교 단체에서 내가 학교생활을 오래 했으니까 원장으로 일해달라고 하더라고왜냐하면 교장이나 초·중학교 교사를 10년 이상하면 어린이집 원장 자격증을 받을 수 있거든그렇게 자격증을 받고 어린이집을 개원해서 원장을 10년 했어. 나는 초···대학교 선생님을 다 해봤는데 유치원 선생님만 못해봤다 했는데 우연히 이런 일이 나한테 주어진 거야내 삶의 경험을 토대로 미래 세대를 위한 봉사를 거의 10년 동안 하게 된 거지.

 

은퇴 후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학문이라는 게 연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단순 학문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교육 패러다임이기 때문이야. 근데 우리가 현직에서 학회활동을 할 때는 끈끈한 유대가 있는데 은퇴 후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그래서 내가 예전에 제안한 것이 역대 고문님회장님을 모시고 친목회를 만들어서 우리끼리라도 만나자고 했던 거야그게 말뿐이지 잘 안되더라고앞으로는 좀 장기적으로 그런 모임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먼저 삶에서 체험한 얼사상정신 이런 것이 후학에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이런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포츠교육학회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잖아특히 스포츠교육학회에 헌신하신 분들이 어떻게 이 학문의 디딤돌을 놓고 노력했는가를 잊지 말아야 해그리고 스포츠교육학의 학문성과 전문성이 현장에 투입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현장에 있는 박사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스포츠교육학만의 장점이기도 하고.

 

 

▲ 인터뷰가 끝난 후 카메라를 응시하는 송명환 고문님과 기자단.

 

 

그의 꿈을 향한 여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름의 햇볕만큼 그의 발자취는 뜨겁다. 과거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싶다는 송명환 고문님. 그의 꿈을 향한 두드림은 후학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스포츠교육학회 홍보이사 이승배

한국스포츠교육학회 명예기자 전선영

한국스포츠교육학회 명예기자 김은혜

한국스포츠교육학회 명예기자 황영호

한국스포츠교육학회 명예기자 정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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